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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김지학의 세상다양] 개신교는 어떻게 사이비의 요람이 되었나

<나는 신이다>를 둘러싼 문제의식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일찍이 지상파에서 보도되었던 사건들을 다루었음에도, 지금 이렇게까지 큰 관심과 분노를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 지상파에서는 범죄 피해 영상을 모자이크로 보여주거나 녹취 등의 음성파일의 경우에도 아주 충격적인 것들은 "삐-" 처리를 하는 등, '수위'가 조절된 자료가 방송으로 송출되었다. 그에 반해 이번에는 OTT(영화, 다큐멘터리 등 미디어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제공함)라는 채널의 특성상 규제가 지상파만큼 강하지 않다. <나는 신이다>에는 영상과 음성이 있는 그대로 나왔다. 또한 영상 자료가 없는 것들은 재연 배우들의 연기로 범죄 현장을 그대로 묘사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더 '선정성'이라는 용어로 비판받는다.


선정성에 대해 감독의 생각은 다르다. 감독은 기자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다큐멘터리의 영상들은 성적인 자극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실제 있었던 범죄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며, 다른 피해자들이 발생하지 않게 하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폭력과 범죄 묘사 수위의 적절성에 관한 논의는 N번방, 박사방 보도 때도 있었다. 다른 언론사들이 여러 차례 해당 사건을 보도했으나, 국민일보를 통해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에게 저지른 범죄가 적나라하게 묘사됐을 때 사람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이 분노는 가해자들이 잡히는 계기가 마련되는데 일조했다. 폭력과 범죄를 언론이 어떻게 보여주며 알려야 하는지에 관하여 각자의 관점에서 올바른 방향을 주장할 수는 있지만, OTT와 지상파에 새로운 규정을 만들고 합의하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나는 신이다>가 많은 비판을 받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으며, 문제해결을 위한 해결책이나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감독은 자신은 거기까지 목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전히 그 종교 안에 있는 분들이 많이 보길 바랐고 그곳에서 나올 수 있기를 바라며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기쁘다고 말했다.





비록 다큐멘터리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명쾌하게 지목하고 있진 않지만, 문제의식을 느낀 바로 우리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넷플릭스


'메시아'가 필요한 사회


한겨레의 한 보도(2020년 3월 6일자)에 따르면 한국에는 자신이 하느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20명,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50명 있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도 자신이 하느님이라고 주장하거나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압도적인 비율로 한국에 제일 많다. 대체 이유가 뭘까?


스스로 "신"이라고 주장하게끔 하는 선천적이거나 유전적인 무언가가 존재하며, 그 무언가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한국인에게 유독 많은 걸까? 그럴 리는 없다. 질문에 답하기 위해 '사회문제'라는 관점에서 접근해보자.


첫째로, 한국사회가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 이 나라에 자신이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이 나라가 "메시아가 필요한 나라"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메시아를 찾는 수요가 높다는 얘기다. 정치, 사회보장 제도, 공동체가 모두가 존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죽음 이후의 세상에 목표와 희망을 두고 살아갈 게 아니라 지금 이 삶을 충만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법과 제도, 공동체가 필요하다.


둘째로, 한국 사회는 자신이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교주들의 말이 믿을 만한 말로 여겨질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져 있다. <나는 신이다>에서 다루어진 종교는 대부분이 개신교 기반이다. 개신교는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정상적인 종교"로서 여겨지고 있으며 개신교의 자유를 종교의 자유로 선언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도록 널리 퍼져 있다. 반면 무속신앙은 터부이며 애초에 '사이비'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이에 따른 피해나 범죄를 가시화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개신교 기반의 종교와 무속신앙 등 '사이비 종교'에서 다루어지는 신비주의, 영적 체험이 정신질환과 어떻게 함께 이야기되는지 생각해 보면 보다 이해가 쉽다. 많은 개신교 기반 종교에서는 영적 체험을 성스럽고 신성한 것으로 여기며, 신앙심을 통해 정신질환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말하며 전도하기도 한다. 반면, 신내림과 같은 무속신앙의 영적 체험은 그 자체를 정신질환의 사례로서 병적인 것으로 판단하며 배제하고 꺼린다. 정치와 사회보장 제도, 공동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정상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욕망은 새로운 "메시아", "신"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힘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개신교의 교리와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 익숙함을 넘어 아주 신실한 사람들이 개신교 기반 사이비 종교에 심취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무신론자이거나 무교인 사람들은 개신교 사상 자체도 전혀 믿어지지 않고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주들이 하는 이야기를 쉽게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의 사상과 문화가 익숙하고 너무 당연한 사람들은 교주들이 하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비밀들이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냥 무턱대고 믿으라고 하는 교회, 성경 속에서 발견되는 모순이나 불합리함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교회, 목사의 설교를 의심하거나 설교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불신이고 죄라고 하는 교회에서 답답함을 느껴왔던 사람들은 사이비 교리를 통해 마치 비밀이 풀리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다큐멘터리를 보며, 그래도 어떻게 이렇게 심각하게 몰상식하고 폭력적인 언행을 믿을 수가 있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추측컨대, 질문하는 이들은 신앙생활을 하거나 오래도록 신앙생활을 가까이서 관찰한 경험이 없을 것이다. 나조차도 개신교인으로서 신앙생활에 더없이 신실했던 경험이 있기에 <나는 신이다>의 신도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겪고 본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


나는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모두 교회에 다니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기 때부터 시작해서 약 서른 살 때까지 30년 이상의 기간 동안 교회를 다니며 할 수 있는 모든 봉사를 다 했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봉사팀, 성가대, 회장, 부회장, 청년부 때도 회장, 소그룹 리더, 유치부 교사 등 온갖 활동을 했고 선교단체에도 소속되어 선교사로도 2년 간 활동했다. 그런 나는 <나는 신이다>에 등장하는 교주들의 언행과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가 매우 낯이 익다. <나는 신이다>에 나온 모든 폭력과 착취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개신교 교회에서도 전부 다 일어나는 일들이다.


목사들이 자신을 하나님이나 예수님이라고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하나님이나 예수님의 음성을 대신 전해주는 사람(대언자)이라고 하는 일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목사가 스스로, 혹은 장로가 '오늘 우리에게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의 입에 하나님의 음성을 넣어달라'고 기도한다. 그 기도를 듣고 설교를 듣는 성도들에게 목사의 설교는 하나님의 음성이 되는 것이다.


특히 대형교회 목사들 중에는 담임목사, 원로목사, 당회장 등 갖가지 높은 직함을 차지한 사람들이 많다. 목자님, 선생님과 같은 호칭은 아주 겸손한 호칭이다. 높아 보이는 호칭들과 함께 그들은 물리적으로도 높은 곳에 위치한다. 설교할 때도 높은 교단 위에서 '말씀'을 전한다. 대형교회의 경우, 교단이 2단, 3단으로 되어있는 게 예사다. 가장 높은 단상에는 담임목사만 올라갈 수 있다.


다른 목사들, 대표기도를 하는 장로나 집사들은 가장 높은 교단에는 올라갈 수 없다. 목사가 권위 있어 보이는 가운이나 한복 등의 의복을 입는 것도 일상적이다. 대형교회에서는 예배 또는 수련회나 부흥회 등 행사에서 담임목사와 담임목사의 사역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담임목사의 생일을 위한 행사가 있기도 하고 미리 준비한 이벤트(춤, 노래 등)를 벌이기도 한다.


성도들이 헌금을 내도록 하기 위해 만든 수많은 예배들과 행사들이 있다. 수요예배, 금요철야는 물론이고 매일 새벽기도가 있다. 일천번제, 삼천번제 등의 이름으로 1,000일, 3,000일 물질을 심으며 새벽기도를 한다. 나의 할머니도 했고 부모님은 지금도 하고 있다. 일요일에는 새벽기도를 시작으로 7시 예배, 9시 예배, 11시 예배, 1시 예배, 3시 예배, 5시 예배, 저녁 예배인 7시 예배까지 있다.


주일헌금, 십일조, 건축헌금, 특별헌금, 목적헌금 등, 헌금 종류도 참 많다. 돈을 많이 낼수록 신앙이 깊은 것이고, 믿음 깊은 신자는 하나님께서 축복을 많이 해주시기 때문에, 헌금을 많이 내는 만큼 돈을 많이 벌 것이며, 돈을 많이 벌면 감사하기 때문에 헌금을 많이 한다. 록펠러 등의 이야기를 하며 십일조를 해야 축복받고 십일조를 안 하면 벌 받는다는 이야기는 늘 듣던 이야기다. 너무 익숙하다.


헌금한 금액에 따라 번호표를 나눠주진 않지만, 헌금을 많이 내는 사람들이 예배 때 맨앞자리에 앉는 것은 동일하다. 예배당 맨앞줄에 장로석이 있기 때문이다. 장로들은 장로들의 모임인 장로회도 있고 장로들의 공간인 장로실도 있다. 교회의 규칙이나 사업을 결정하기도 한다. 교회 내의 '국회의원' 같은 역할과 권위를 부여받는 것이다. 장로가 되려면 돈을 많이 내야 한다. 아무리 성실히 장시간 봉사하며 한 교회를 오래 섬겼어도 헌금을 많이 못/안하면 장로가 될 수 없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면(특히 대형교회를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새로운 사업을 하면 그 사업장에서 담임목사를 모시고 기도를 받는다. 그리고 그 때 감사헌금을 드려야 한다는 것도 당연한 이야기다. 큰 교회 같은 경우에는 담임목사가 모든 성도들의 사업장에 갈 수가 없다. 각자가 속한 자신의 구역을 담당하는 목사들이 심방(방문)을 간다.


담임목사가 아닌 다른 목사가 와서 예배를 인도하더라도 돈을 내야 한다. 교회 내의 직분이 높거나(장로처럼) 담임목사와 가까운 사이여서 담임목사를 초대할 수 있으면 돈을 더 내야 한다. 사업장이 아니라 가정 심방도 마찬가지다. 돈을 내야 한다. 담임목사실에 가서 따로 기도를 받으려면 돈을 내야 한다. 당연하다. 담임목사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주 영광스러운 기회이며 특별한 일이기 때문에 특별헌금을 내는 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주만 아방궁 같은 곳에 살고 신자들은 노예처럼 일하는 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냐고 질문하는 분들이 있다. 모든 대형 교회는 대형 교회가 되기까지의 스토리가 있다. 허름한 지하실이나 동네 상가를 빌려서 교회를 시작했다가 성도 수가 불어나기 시작하면서(그 시기에 병 고침 등의 능력을 보이는 목사들도 이야기도 꽤 있다) 성도들이 신문지에 수백만원씩 둘둘 말아서 헌금하고, 그렇게 수천 평의 땅을 사고 건물을 올린다.


전 재산을 바치다시피 하는 사람들도 많다. 재산과 함께 자신의 시간과 삶을 바친다. 성도들은 그렇게 헌신하며 교회에서 직분을 받고 계속 무료로 봉사한다. 성도들의 십일조, 건축헌금, 주일헌금이 매일, 매주, 매달 지속적으로 들어온다. 교회는 점점 증축하고 확장한다. 도시 곳곳에 그리고 전국적으로 지성전을 내고 지성전에는 파견목사들을 보낸다. 그 쪽에서도 헌금이 들어온다. 성도수와 헌금이 일정 규모 이상에 해당하는 교회를 사서 그 교회 담임목사를 자신의 파견목사로 만들기도 한다. 그 교회에서 들어오는 헌금이 그 목사의 월급 이상이 되면 남는 장사다. 성도들의 헌금으로 재단을 만들고 그 재단 산하기관인 사회복지단체들을 만든다. 담임목사는 법인의 이사장이 된다. 지자체의 보조금을 받으며 운영하는 사회복지기관 같은 경우에는 직원들의 임금은 지자체 돈으로 주고 기관의 기관장에 대한 인사권은 이사장이 가진다. 그런 방식으로 그 지역에서 권력이 커진다.


담임목사의 자녀들은 유학을 다녀온다. 자녀가 몇 명이든 전부다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박사까지 하고 오는 일도 허다하다. 담임목사들에게 고급 외제차나 고급 세단을 사주는 일, 기름값까지 모두 다 교회에서 내주는 일 등 교회가 사유화되는 사례는 세세하게 모두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리고 그 교회는 아들이 물려받는다. 너무나 익숙한 일이다.


돈만 문제인 것도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전문직 중 성범죄를 제일 많이 저지르는 직군이 목사다. 신뢰하는 관계를 만들어 놓고 성적인 관계로 변질시키는 그루밍이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교회 내 성범죄는 한국 사회에서 너무 익숙한 일이다. <나는 신이다>에 나온 교주들과 그들의 종교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성도들끼리 가족들끼리 육체적으로 때리게 하지는 않지만, 육체적인 폭력만 아닐 뿐이지 정서적 폭력과 언어적 폭력을 서로에게 가하게 하는 것은 그냥 문화라고 볼 수 있다. 술, 담배, 섹스와 같은 수준의 것들을 마치 이 세상 가장 큰 죄악인 것처럼 만들어 놓고, 순결하고 순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심어줌으로써 서로 정죄하고 비난하게 한다. 나는 청소년기에 오락실에 한번 다녀왔다고 펑펑 울며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성도들끼리 그리고 가족끼리 언어적, 심리적, 정서적 폭력을 가하게 하는 언행은 그동안 늘 있어왔다. <나는 신이다>에 등장한 교주들이 성도들에게 했던 모든 행동들은 개신교에서 목사들이 성도들에게 하게 하는 행동과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사실상 동일하다. 그 어느 하나도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과 매칭되는 것들을 찾지 못한 것이 없다. 내가 개신교가 우리 사회에 사이비 교주들의 말을 믿을 수 있는 문화를 사회 저변에 펼쳐 놨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개신교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사이비"라고 불리는 교회에서 일어나고 목사들이 하는 언행이 교주들이 하는 언행이기 때문이다. 개신교 교회를 다니던 성도들이 사이비 교주를 만났을 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앞으로의 교회 문화는 성도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불신(호기심, 질문)하지 말고 무조건 믿으라는 식의 태도는 사라져야 한다. 그런 태도가 '신앙'이고 '믿음'이라고 가르치는 교회에 몸담고 있다면 떠나야 한다. 한국 교회의 문화와 성도들이 신앙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를 만들 수 있다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에 다가갈 수 있다.



KBS 더라이브 방송 화면 ⓒ출처 : 화면캡쳐


당신의 믿음은 폭력인가요, 사랑인가요?


세 번째 근본적인 원인은 종교가 저지르는 폭력과 착취를 국가가 방관하고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주들이 계속 도망가고 풀려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정치인들과 공무원들(검찰, 경찰, 국정원 직원 등)이 있다고 한다. 그들이 교주들의 폭력과 착취가 은폐되고 지속될 수 있도록 도왔고 그 범죄가 세상에 드러난 후에도 범인을 숨겨주었다. 지금도 개신교가 됐든 사이비가 됐든, 그저 당선되는 데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종교를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당내 경선이든 총선, 대선이든 자신의 선거를 위해서 종교를 믿는 신자들을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매우 많다.


한국 사회는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많은 불법적인 것들을 그냥 눈감아주는 사회다. 종교라는 이름을 가졌을 때 허용되는 것이 지나치게 많다. 종교는 왜 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인가? 교회 등의 종교 기관은 왜 세금을 내지 않는가? 종교의 권력은 왜 세습을 해도 되는가? 이제는 재벌 기업조차 아무 이유 없이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주었다가는 사회적으로 강하게 지탄받는다. 주식 보유가 됐든 뭐가 됐든, 어떻게든 합법적인 모양새를 갖추고자 노력을 한다. 양도세나 소득세 등 책임질 것들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교회에는 그런 책임조차도 없다. 그렇게 국가는 종교를 초법적인 존재로 만들어 주고 여러 가지 유형의 폭력을 용인, 은폐하며 범죄를 방관, 조장하고 있다.


종교의 자유란, 어떠한 종교도 믿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뜻이지, 종교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사람을 해치고 착취하고 죽이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개신교든 "사이비"든 뭐든 마찬가지다. 폭력을 종교의 자유라고 포장하지 말자. 개신교의 이름으로 목사 타이틀을 달고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무슬림 등 다른 종교들에 대한 차별, 혐오, 폭력을 일삼고 조장하고 방조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이들과 같은 메시지를 내는 극우 정치인들과도 한 몸이다.


정치와 종교의 유착, 자본과 종교의 유착, 정치와 종교와 돈의 유착. 이것을 끊어낼 수 있다면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풀릴 수 있다. 나는 우리 사회가 이미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해결을 하면 된다. 그러나 슬프게도 정치, 종교, 자본의 기득권자들이 이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


'정상적인 종교' 혹은 '좋은 종교'란 무엇일까? 개신교, 천주교, 불교가 정상적인 종교이고 그 이외의 종교들은 비정상이거나 이상한 종교일까? 정상적인 종교가 좋은 종교이고 다른 이상한 종교들은 나쁜 종교일까?


나는 개인에게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모두가 평등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을 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 종교가 좋은 종교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개인을 착취하고 사회적으로는 평등이 아니라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종교는 나쁜 종교다.


종교가 기존의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체제들을 유지하는 역할이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변혁시키는 역할을 할 수는 없을까?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사회를 구조적으로 인권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역량을 가질 수 있다면 종교를 선택하든 하지 않든 잘못된 종교에 빠지지 않고 자신과 사회에 이로운 방향의 선택들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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