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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레터붉은 예복을 입은 신부 - 1. 바다와 천체 [말풍선]



바람 따라 물결치는 초록 들판. 오염을 모르는 청량한 하늘 아래, 맑은 표정을 지은 사람들이 산다. 상앗빛 벽으로 둘러싸인 저택. 안주인은 지치지도 않고 생명을 잉태하고 낳았다.

 

그녀의 열 명 가까이 되는 자식 중 장남은 어디 내놓아도 돋보였다. 마을 젊은이 중에서 유독 키가 컸고 이목구비는 영화배우처럼 뚜렷하니 잘생겼다. 부부는 장남에게 바다와 연이 깊은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를 이 이야기에서 ‘바다’라고 부르기로 한다.

 

바다는 외모도 수려했지만 뇌 또한 비상했다. 고국은 그가 만족할 만한 배움을 제공하지 못했다. 이역만리 유학길에 오른 바다가 고생 끝에 도착한 나라는 한국이었다.

 

유학 생활은 고단했다. 바다의 하루는 공부와 일로 꽉 채워졌다. 그나마 일찍이 한국인으로 귀화한 삼촌네 가게에서 일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힘겨운 나날에 적응해가던 어느 날. 바다는 낯선 한국땅에서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여자는 바다보다 한 살 나이가 많았다. 적갈색 머리카락을 동그랗게 모아 묶고, 깔끔한 흰 블라우스 위에 얇은 검정 카디건을 덧대어 입었다. 차림새가 단정한 여자는 얼굴도 동글동글, 사람 순하게 생겼다.

 

그런데 하는 짓은 딱 봐도 왈가닥이다. 정체 모를 낯선 사람을 만나러 온 자리에, ‘꼬우면 배 째든가’라는 듯이 짝다리를 짚고 담배를 뻑뻑 피워대던 한국인 여자. 바로 나. 20대 중후반의 태연이었다.

 

첫 만남. 그와 나는 서로 무슨 말을 할지 몰라 한참을 쭈뼛거렸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용기를 내어 물었다.

 

“Do you know soju? It's Korean whiskey.”

 

바다는 소주를 안다고 했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과자와 소주를 사다가 간단한 술자리를 가지면서, 노트에 알파벳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의사소통을 했다.

 

그런 적이 처음이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그저 취기 때문이었을까. 그때 참 많이 웃었다. 즐거웠다. 담배 연기 뿜고 술 냄새 폴폴 풍기는 장면에 어울리는 말은 아니겠지만, 아이처럼 순수해진 기분이 들었다.

 

노트에 조개껍질, 작은 파도, 불가사리, 별을 그렸다. 바다는 자기 이름의 뜻이 ‘바다’에서 나는 무언가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스스로 이름을 지었고, 내 이름이 천체에 속해 있다고 알려주었다. 바다의 고향은 파키스탄이었다. 고국의 본가에는 터울이 많고 사랑스러운 동생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보다시피 여기,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고, 가족과는 사이가 그저 그렇다고 얘기했다.

 

그는 나에 대해, 나는 그에 대해 알고 싶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어떤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대체 무슨 배짱이었는지, 처음 만난 날에 나는 바다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나 사실 트랜스젠더야.’ 바다는 당혹스러워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외려 내 손등을 쓰다듬으며, ‘얘기해줘서 고맙다’라고 속삭였다.

 

바다가 살던 동네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무슬림이라고 했다. 바다와 만나는 동안 나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 파키스탄에서 곧잘 마신다는 차를 직접 함께 만들어 마셨다. 향이 강한데도 맛은 달콤했고 목 넘김은 부드러웠다. 바다는 닭 요리를 자주 해 주었다. 전부 다 맛있었다.

 

그와 만나면서 나는 ‘할랄 푸드’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슬람 종교 질서에 위배 되지 않는, 무슬림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했다. 바다가 한국에 마련한 보금자리 주변에는 다른 무슬림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할랄 푸드만을 취급하는 식료품점이 들어서 있어서, 바다와 나는 꽤 자주 그곳을 드나들었다.

 

데이트는 거창하진 않았지만 만족스러웠다. 바다와 함께 팔짱을 끼고 걸으면서, 간판에 쓰인 한글을 뭐라고 읽는지 알려주곤 했다. 동네 공원에서 하얀 토끼풀 꽃을 꺾어서 반지를 만들어 그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바다는 종종 내 눈동자를 가까이서 촬영했다. 짙은 갈색 홍채 안에 바다가 웃는 모습이 비친 게 고스란히 찍혔다. 대체 그런 건 어디서 배웠던 건지. 아니, 잘 배웠다고.

 

나는 바다와의 의사소통을 좀 더 원활하게 하고 싶었다. 자격증 시험에만 몰두해도 모자랄 판에 느닷없이 영어 회화 공부를 시작했다. 수시로 이 번역기, 저 번역기 어플을 돌려보며 내 영어 능력을 향상시키려 노력했다. 애쓴 보람은 있었다. 연애 후반에는 카카오톡으로 바다와 무난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연애, 결코 쉽지 않았다. ‘로맨틱’이라는 커튼을 거두면 냉엄한, 좀 대놓고 말하자면, 더럽고 치사한 현실이 보였으니까.

 

바다는 영어를 참 잘했다. 강의도 영어로 진행되고 교재도 영문으로만 이루어진 대학원 수업을 무난하게 소화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간혹, 미국 드라마에서 들어본 것보다도 훨씬 기름지게 혀 굴리는 ‘유창한’ 영어 발음을 뽐내는 한국인들이 있었다.

 

꼭 우리더러 듣고 배우라는 듯이 큰 소리로 ‘영어력’을 과시하던 그들이 괘씸하면서도 가소로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바다보다 영어에 빠삭할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인 애인과 사귀면서, 나는 ‘한국에 인종차별이 없다’라는 말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인지를 직접 경험했다. 그저 연인이 버스에 앉아있을 뿐인데, 무슨 외계인이 지구인 여자 납치해가는 현장을 목격한 양 쳐다들 보는 건 무슨 무례한 경우인지.

 

그래도 괜찮았다. 가끔 열 받고 짜증도 났지만, 견딜 수 있었다. 왜냐면,

 

“Will you marry me?”

 

청혼을 받아버렸으니까.

 

혹자는 바다가 비자 문제 때문에, 한국에 체류하는 기간을 늘리려고 나를 이용하려는 게 아니겠냐고 의심부터 했다. 나는 근거 없는 의심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역시, 그럴 리 없다. 그런 목적이라면 굳이 하필 골치 아픈 트랜스젠더 여성을 타깃 삼을 이유가 없을뿐더러, 이건 헤어지고 나서 한참 뒤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는 꽤 오래도록 나를 잊지 못했다.

 

나는 바로 “YES!"가 입에서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고, 좀 더 기다려 달라 했다. 마음의 준비도 필요했고, 내가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은 뒤에 결혼이든 뭐든 하고 싶었다. 자격증 시험 준비에 허덕이는 가난한 취업준비생에게 결혼은 너무 현실과 먼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