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모두를위한화장실
성별이분법적이고 성인, 비장애 중심적인 화장실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1인화장실 형태의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도입된다면 키가 작은 어린이, 성별이 다른 보호자와 함께 화장실을 이용하는 노인 또는 어린이, 다양한 종류의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장애인들, 성별이 다른 활동보조인과 함께 화장실을 이용하는 장애인들, 다양한 성정체성을 가진 성소수자, 몸이 불편한 노인, 생리컵을 이용하는 여성이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단지 트랜스젠더만을 위한, 혹은 장애인 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성별이분법적인 화장실이 계속하여 재/생산하고 있는 성별이분법 규범에서 벗어나 여자다운 여자, 남자다운 남자일 필요없이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가도 된다는 사회구성원리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의 제기 :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화장실은 마땅히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 권리로서 제공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화장실은 가장 사적인 공간인 동시에 가장 정치적인 공간으로, 누군가에게는 이용자격이 주어지지만 누군가는 철저하게 배제하는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존의 화장실을 사용하는데 있어 어느 화장실을 들어가야 하는지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이미 성정체성의 문제에 있어 특권그룹*에 해당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사회가 규정하는 성기 모양에 따른 지정성별과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이 다른 트랜스젠더의 경우 외부에서는 성별이분법적인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해 방광염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현재의 성별이분법적인 화장실은 모두를 포함하지 못할 뿐 아니라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생리적인 현상의 해결조차 가로막는 기존 화장실은 반인권적 이기까지 합니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에도 성중립화장실(Gender neutral toilet)을 설치했습니다. 이는 백악관을 출입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와 관계없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게 하기위한 당연한 조치였습니다. 성중립화장실의 설치는 성소수자에게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기존의 화장실은 시스젠더 비장애인 성인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성별이 다른 노부모를 모시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들, 성별이 다른 활동보조인과 화장실을 이용하는 장애인, 성별이 다른 부모와 화장실을 이용하는 아동, 부모를 동반하지 않은 아동 또한 화장실 이용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에 성중립화장실을 요구하는 행동이 단지 성소수자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드러내기 위하여 한국다양성연구소는 ‘모두를 포함하는 화장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모두를 포함하는 화장실은 모든 성별이 이용하는 공용화장실의 개념이 아니라, 화장실에 들어가 대소변을 보고 손까지 씻고 나올 수 있는 1인화장실로 한국다양성연구소는 장애인 화장실처럼 기존 화장실 외에 추가로 모두를 포함하는 화장실 설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화장실에서는 모든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 ‘정상’의 기준에 따라 포함과 배제의 작용이 일어납니다. 성별구분과 비장애 성인이 정상화된 상태에서 어린이, 노인, 장애인, 젠더비순응자들에게 안전하고 청결한 화장실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가 상상될 때 그것은 모두의 화장실이 됩니다. 모두를위한화장실은 단순히 화장실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원리와 질서를 변화시키는 일이며, 무장애(barrier free)를 넘어서 무차별(discrimination free)의 안전한 공간(Safe Zone)을 만들어야 합니다.
*특권그룹: 특권그룹이란 단순히 자신이 속한 사회적 정체성 그룹 때문에 부, 명성, 네트워크 등 사회적 자원에 접근하기 더 쉬운 사람들을 말한다. 특권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억압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 비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부여받는다. 또한 특권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정상, 표준이라고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문제의 결과 1 :
화장실은 외모만으로 확연히 구분 가능한 “남자다운 남성”, “여성다운 여성”에게만 허락된 성별이분법적인 공간으로 기능합니다.
화장실은 그 공간을 이용할 자격을 먼저 묻는 역할을 하고 성별이분법 규범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젠더 표현을 실천하고 있느냐 아니냐를 먼저 심사하는 기능을 합니다.
화장실의 이러한 특징은 다음의 질문을 제기합니다. "누가 화장실과 같은 공간을 이용하기에 적합한 존재인가, 화장실과 같은 공간을 이용할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화장실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어떻게 젠더 실천 방식이 감찰되고 검열되는가." 즉 화장실은 여성성과 남성성,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이라는 이원 젠더 규범을 재/생산하는 정치적 공간으로 존재하며 그 기능을 통해 성별이분법을 반복해 학습하도록 합니다. 이는 성별이분법적인 화장실이 불편한 존재들이 단지 트랜스젠더퀴어만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남성으로 보이는 여성(예를들면 부치)이 여자화장실을 이용하기 어려우며, 그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역할고정관념에 저항하고자 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도 화장실은 불편한 공간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일부 사람들은 안전을 이유로 성별이 분리된 화장실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별이분법 규범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여성화장실에서 몰아낸다고 해서 젠더폭력과 몰래카메라가 결코 근절될 수는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이는 여성이 위험에 놓이게 하는 미소지니라는 구조 안에서 여성의 성적대상화가 당연시 여겨지는 문화라는 근본 문제를 외면하고, 성소수자라는 사회적으로 약한 고리에 범죄의 가능성이 있다는 낙인을 가하는 일일 뿐입니다. 여성이 안전으로부터 취약하게 만드는 견고한 미소지니의 구조가 전복되지 않는 한, 여성에게 안전한 화장실이 만들어지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안전한 화장실을 요구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피해를 당하는 보호의 대상으로 위치지어질 때 이는 외려 미소지니를 강화시키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의 결과 2 :
2015년 발표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 결과발표 토론회> 자료집에 따르면, 트랜스젠더퀴어가 화장실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차별을 겪는 비율은 절반 가량이며, 48.1%는 공중 화장실 이용 자체를 포기했다고 답했습니다(정현희, 66). 김혁 감독의 단편 영화 <첫 외출(Going Out)>(2018)은 이 도시의 빽빽하게 자리 잡은건물 어디에도 트랜스가 안전하게/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 하나 없는 현실을 포착하며, 트랜스가 외출하는 일이 얼마나 피곤하고 곤란한 일인지를 드러냅니다. 외출은 언제나 화장실 이용과 결부된 사건이며 그래서 어떤 식의 각오가 필요한 일입니다.
2019년 열린 <모두를위한화장실 토론회> 자료집에 따르면 많은 트랜스젠더퀴어는 외출했을 때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으려고 음류수를 최대한 마시지 않습니다. 일부 트랜스젠더퀴어는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는 카페 목록을 가지고 있기도합니다. 낯선 장소에 갈 때, 마침 애인이나 화장실 문제를 함께 논할 수 있는 친구가 같이 있다면, 애인이나 친구에게 화장실이 어떤 형태인지, 자신이 갈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 최우선 관심사입니다. 약속 장소 부근에 갈 곳이 마땅한 화장실이 없거나 모를 때 약속 자체를 취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화장실은 트랜스젠더퀴어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대소변을 제때 해결할 수 있는가, 방광염에 걸리지는 않는가, 물을 자주 마셔야 하는 질병이 있을 때 물을 제때 자주 마실 수 있는가, 그리고 손을 자주 씻을 수 있는가)인 동싱에 트랜스젠더퀴어가 공공 영역에서 활동하고 인간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에도 영향을 끼치는 문제(외출해서 친구나 지인을 만날 수 있는가, 낯설고 이동 시간이 먼 행사장에 참가할 수 있는가)입니다. 다른 말로 트랜스가 살고 있는 공간을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구성원은 누구인가와 긴밀하게 얽힌 문제가 화장실 문제입니다.
문제의 결과 3 :
장애인화장실의 경우 오랜 장애운동을 통해 장애인화장실을 확보하였음에도 탁상행정으로 만들어진 장애인화장실의 규격은 현실에서 많은 장애인들의 실제이용에 큰 불편함을 주고 있습니다. 전북장애인인권연대 심지선 활동가는 “대소변을 볼 공간이 있어도 잠겨 있거나, 좁고 청소 도구들로 꽉 차 있어서 들어갈 수 조차 없는 상황에서 대소변을 오래 참을 수 없는 신체적인 여건 때문에 옷에다 볼일을 봐버린 난감한 상황, 전등과 출입문 개폐 버튼이 높아서 들어갈 수 없어 다른 도구를 이용하거나 지나가는 사람이 있을 때 도움을 청해서 들어가는 상황, 물내림 버튼이 등뒤에 있어서 몸을 돌리기 힘들고 손에 힘이 부족한 장애인은 물을 못내리고 나와야 하는 민망한 상황, 휴지걸이가 높이 있어서 뒤처리를 못하고 나와야 하는 찝찝한 상황, 변기가 막혀있는 상황에서도 변기 물내림 자동센서가 작동해서 변기물이 흘러 넘쳐도 피하지 못해 앉아 있는 상황, 옷이며 바닥까지 흥건하게 오물이 쏟아져도 비상벨이 높이 있어 누르지도 못해 그저 죽고 싶을 만큼 비참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는 기존의 화장실이 비가시화를 요구받는 장애인들을 포함하지 못하고 생색내기식에 그쳐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무성적인 존재이기를 강요받아온 장애인들은 성별이 분리된 화장실을 요구했고 받아들여졌지만, 이는 결국 다른 성별의 활동보조인과 함께하는 장애인 뿐 아니라 성별의 선택이 불편한 성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장애인들에게 불편함을 야기했습니다.
문제의 원인 1 :
사회적으로 공고한 성별이분법과 정상신체중심주의는 법과 제도, 사회문화, 시설형태 등의 구조화를 통해 차별과 배제를 강화합니다. 구조화된 차별은 차별을 가하는 사람도 스스로 그것이 ‘차별’이라 인지하지 못할만큼의 강력한 학습효과를 주며, 차별을 받는 사람은 구조의 문제로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자책합니다. 화장실이 모든 사람의 기본적 권리가 아니라 도시의 공간을 소유하거나 점유함에 따라서 주어지는 이용 자격이 되는 것, 어떤 공간에는 어떤 규범과 질서를 체현하고 있는 신체에게만 입장이 허용되는 것, 주류질서와 불화하는 존재에게 불화의 책임을 돌리는 것, 그래서 화장실 이용을 위한 부담과 비용의 책임을 불화의 당사자에게 매기는 것. 그것이 문제입니다.
문제의 원인 2 :
통상의 화장실은 계단 사이, 건물의 가장 구석진 곳, 혹은 건물 바깥 어두운 좁은 골목을 지나야 도달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때문에 화장실에서 위험한 일이 발생해도 다른 사람이 인지하기 어렵게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화장실의 공간적 배치는 화장실이 반드시 필요한 공간임에도 건축물을 만들 때 인간의 공간적 삶에서 가장 나중에 고려된다는 점을 확인시켜줍니다. 다른 말로 화장실을 통해 많은 위험한 사건, 불안한 일이 발생하고, 많은 불편을 일상에서 빈번하게 겪고 있음에도 성별 구분 화장실을 만들면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식의 정책은 나와도 화장실의 위치와 구조 등 화장실 자체는 전혀 논의되지 않습니다. 아하의 화장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건물 가운데 화장실을 설치한다면 위험 상황이 발생해도 그 위험이 발견될 가능성을 조금은 더 높여줄지 모릅니다. 동시에 건물의 가운데 배치한다는 말은 화장실 관리가 더 철저해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화장실이 건물/공간의 어디에 설치되어야 하는가부터 화장실의 안전을 어떤 식으로 만들어갈 것인가와 관련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제공합니다. 안전은 트랜스젠더퀴어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보장되기보다 화장실이라는 공간의 위치, 화장실의 방음벽이나 안전 장치를 구축하는 방식 등을 다각도로 고민할 때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